우리는 어떤 상황을 묘사하거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려고 할 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단어를 써서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가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더 세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그는 기분이 언짢았다."라는 글귀보다는 "그의 미간 근육이 뭉치면서 선 세 개가 생겼다."라는 글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그것은 세상에서 불변하는 대상이라 여겨지는 얼마간의 것들에 대한 지식은 유전 정보를 통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물체가 아래로 떨어진다, 두 개의 물체는 서로 겹쳐져서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지 못한다 등의 물리적 법칙-[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 감정을 식별하는 능력은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선천적 맹인이 사람의 얼굴을 만져보고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을 통해 감정을 맞췄다는 실험을 어디서였던가 본 기억이 난다. 무엇-구름 모양 등등-이든 얼굴로 생각한다. 그만큼 뇌는 얼굴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우리가 후천적으로 배우는 단어에 의한 감정의 연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얼굴 표정과 제스처 및 행동, 목소리 톤 등의 비언어적 정보에 대한 해석 기능을 자극하는 것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한국어, 영어, 독어 등등-를 듣고 그것을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생생한 표현이 된다. 한 예로써 관심 있다, 흥미 있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오랜 시간 쳐다본다는 행동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주인공인 휴머노이드 콜리는 이미 어려운 단어나 개념을 알고 있는 상태이지만, 경험이 없을 뿐이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주로 딸이겠지만)가 질문을 한다면 세상의 어떤 아빠가 흐뭇하지 않을 수 있을까. 콜리는 기수 로봇이지만 실은 인공지능이라는 설정을 토대로,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그린 것 같았다. 사람이 느끼는 주변 관찰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박하고 순수한 인공지능의 입을 토대로 사람의 모순되는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능과 자아는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접근이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인간에 대한 상당한 관찰과 고민을 토대로 쓸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이 책을 26살이었던 작가가 3주 만에 썼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책 말미에 심사평이 나온다. SF 설정은 거들 뿐 결말까지 잘 짜인 이야기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대상 선정 이유들이다. 이 작품은 콜리의 묘사는 탁월하고, 대상을 받을 만큼 잘 구성되어 있다.
배경은 2035년 대한민국 과천 경마장 근처.
등장인물 목록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름은 브로콜리. 줄여서 콜리라고 불러도 알아듣는다. [드래곤볼]의 등장인물인 베지터. 그의 이름이 베지터블에서 따온 것과 유사하다.
*검은색 경주마. 이름은 투데이.
*경마장 보안관 다영. 처음에는 문도 열어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등장하지 않아서 김보경이 북문으로 통과할 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고 문도 그냥 열려있는 상태로 놔두었다.
*오연재의 언니. 19세 오은혜. 휠체어를 탄다.
*고교생 오연재. 하반신이 망가진 콜리가 폐기되기 전에 사다가 혼자서 고쳐낸다. 하지만 언니를 위한 전동 휠체어나 외골격 슈트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은혜 자매랑 친한 마사 관리인 남성 도민주. 뭔가 콜리의 자상한 아빠 같기도 하다.
*연재와 은혜의 엄마 김보경.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김보경의 남편이자 은혜와 연재의 아버지. 소방관이었고 순직했다. 성씨는 오.
*휴머노이드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인 아빠를 두었고, 오연재의 학급 친구인 여학생 서지수.
*경마장에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하는 수의사 여성 민복희.
*엠 방송국 시사기획부 기자 우서진. 우은혜 자매의 친척 오빠.
콜리에 대한 묘사가 제일 훌륭하다. 다만 그 외의 부분에서 마음에 걸려서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이 세 군데가 있었다.
1. 이곳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수의사 민복희의 입을 빌려서 나온 작가의 말. 여기만큼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죽음이 어떻게 생존이 된다는 것인지. 유전자는 단지 자기복제를 하는 것일 뿐이라는, 유전자는 개체를 타고 영생한다는 개념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잘 소개하고 있지 않았던가.
2. 휴머노이드는 국어사전에도 인간형 로봇이라고 나와있다. 한데 왜 작가는 4족 보행 로봇을 휴머노이드라고 써놓았는지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재난구조용 로봇 다르파는 거머리 형태의 네 발 달린 '휴머노이드'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보면서 연상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모르겠다. 참고로 스팟은 최근에 서울 용산공원 대통령실 앞뜰 잔디마당에 경호·보안 장비로 배치되기도 하였다.
하단 관련기사
https://www.google.com/amp/s/www.donga.com/news/amp/all/20220611/113890629/2
3. 사실 국내 SF 작품이고 젊은 작가의 글이라서 좋은 말만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부분 때문에 도저히 참기가 어렵다. 책에는 도둑고양이(작중 길고양이) 이야기가 세 번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동네에서 쥐를 늘리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행위를 찬성하는 입장으로 보였다. 늘어나는 고양이 때문에 너무 시달리는 삶을 살아온 입장이기에 제발 인식을 바꾸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도둑고양이에게 엄청 시달리며 살아온 만큼 (- 동네 주민인지 누구인지 몰라도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 사료를 흩뿌리고 간 사람도 있었다. 지붕으로 올라와서 지붕 사이의 틈으로 고양이가 계속 들어온 탓에 지붕이 망가지고 바람이 들어오는 틈이 생기기도 해서 고양이가 올라오지 못하는 방벽을 만들고 추가하고 하는데도 여전히 끊임없이 길을 찾아서 지붕으로 올라오고 있다) 제발 부탁하고 싶다. 앞 집의 나이 많은 아주머니(할머니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가 몇 년 동안 고양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매일 주었다. (어느 날은 고양이가 밥 먹으러 왔다며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매일 고양이와 큰 소리로 대화하면서 예쁘다고 우쭈쭈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날은 밥 줬는데 또 와서 달라고 한다며 화를 내고 쫓아내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알기 어렵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앞 집이 이사를 가고 나서야 고양이의 출몰이 덜 해졌다. 요즘에는 밤늦게 집 앞에 모여서 아기 울음소리를 힘차게 내거나, 지붕으로 올라오는 고양이들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이곳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평화를 느껴본다.
SF작품들 속의 설정과 상상을 통해 미래의 실제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독거 노인들을 위한 말벗 인공지능이 보급되고 있다는 [세계는 지금]의 내용을 본 적이 있고, 우리나라의 것도 광고로 접한 적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아주 훌륭한 말벗이 되어주는 휴머노이드를 볼 수 있었다. 꼭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아무리 듣기만 해도 싫증을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감정에 공감하며 마음을 이해해주는 말을 하는 그런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보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등장인물을 모두 통틀어서 가장 상대방에게 공감을 잘해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물이 콜리였다. (처음보는 사람 또는 상당하다고 판단될 정도의 시간을 떨어져있다가 다시 보는 사람인 경우에는 항상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콜리. 어쩌면 초면에 수다쟁이처럼 느껴지는 콜리.)
[코로나 시대의 역발상 트렌드] 민병운 외 4인 (0) | 2022.06.21 |
---|---|
[책벌레의 하극상] 카즈키 미야 (0) | 2022.06.21 |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0) | 2022.06.18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0) | 2022.06.15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0) | 2022.06.1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