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분야에 종사하는 교수님들과 새로이 뛰어드는 학생들이 매년 만들어내는, 또는 할당된 만큼 만들어내야만 하는 논문들이 꽤 있을 것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심리학 모델들이나 이론들이 있고, 세상을 설명하는 데 탁월하면 자주 인용되기도 할 터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현재에는 현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 나중이 되면 더 뛰어난 포괄성을 지닌 이론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는 한다. (절차기억-서술기억. 사리대화-심정대화. 투사. 반동형성. 동일시. 준거틀 등등) ([생각한다는 착각] -닉 채터-의 발상이 포괄성을 지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은 40, 50대의 중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주는 조언들과 상담사례들이다. (머리말에서 언급하듯이 전공서와 논문 같은 딱딱한 글이 아니고 누구에게든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 책이다.) 린다 그래튼이 [100세 인생]이라는 책을 통해서 제2의 인생에 대해 말했듯이([초예측]에서 발췌) 우리는 아이를 양육해서 독립시켜놓고도 40~50년을 더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세상에 맞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번역서와는 다르게 한국의 사례들을 대상으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 방법들이 나온다.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세계 결과에서의 한국 결과를 가지고 바라본다든가 우리 한국 사회에 집중해서 이야기해준다. (두 번 정도는 기존에 썼던 칼럼을 모아놓는 것인가 싶은 중복적인 내용도 있었다.) 대화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4장에서는 부부, 중년 및 노년의 성(性)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의 목차 제목을 적어봤다. 하이픈 뒤에 적은 단어는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1장 중 사랑이 상하면 지배가 된다 - 사랑한다는 착각=지배
3장 중 꼰대라는 말이 싫다면 알아야 할 것 - 권위
3장 중 문제해결력은 중년이 가장 뛰어나다 - 기억
3장 중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야 한다 - 복원력, 자존감
3장 중 닥쳐올 어려움을 미리 예상해 보기 - 오해와 진실
(저자는 수많은 상담 경험을 가지고 확신하는 것이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해서 털어버리고 나면 그 후에는 긍정적인 감정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하고 쌓인 감정을 다 털어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대상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나 즐거웠던 일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끝으로, 소개된 상담 사례에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던 부분을 옮겨 적는다.
"...... 전략
나에게 상담을 하러 왔던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실제로 이런 경우였다. 그녀는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최근까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왔는데, 2년 전에 10대에 접어드는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여성의 결혼 상대가 남매가 딸려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지인들은 거의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혼자 잘 살면서 교육계에서 남부럽지 않게 존경받으며 잘 살아왔는데 왜 아이가 둘이나 딸린 남자와 결혼해서 생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돌보겠다는 자신의 생각이 이상에 지나지 않는 순진한 것이었는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처의 자식들이 사사건건 반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0대인 딸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새엄마에게 일부러 망신 주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수없이 타이르기도 했고, "나는 친엄마처럼 너희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라고 울면서 호소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아버지가 딸을 나무라기 시작하자 자녀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갔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대놓고 '배신자'라고 소리 지르며 악다구니를 퍼붓곤 했다.
그녀는 딸과 아들의 방에 친엄마의 사진을 걸어두도록 권유하였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배려도 했지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 해줄수록 자녀들의 반항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자, 그녀도 사람인지라 결혼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결국 자살을 결심한 그녀는 여러 약국을 전전하며 모은 약을 입에 털어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는 지금까지 자살하면 안 된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왔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네가 자살하려는 것이냐?" 하는 질책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결국 손에 있던 약을 떨어뜨리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상담을 받으러 온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이 부인이 전처의 자녀들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재의 상황에 얼마나 깊이 절망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은 친부모와의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타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혼인 경우에는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재혼은 자녀에게 친부모와 현실의 새 부모와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비록 새아버지나 새어머니가 마음에 들더라도 쉽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새아버지나 새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생모나 생부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도 이제는 새로운 반려자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직 친어머니가 살아 있다. 그런데도 새로 온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자신이 친어머니를 '버리고'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비록 돌아가시긴 했지만 친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현실의 새어머니에게 대들면서 "당신은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당연히 새어머니와의 사이를 좋지 않게 유지하려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어머니는 한 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새어머니가 잘 대해준다고 해도 어머니로 인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친어머니와의 관계를 잊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착하고 믿음직한'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새어머니가 좋은 분이고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면 의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마음속의 어머니와 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현실의 새어머니와는 사이가 나빠야 하고,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부모가 서로 사이가 나빠 이혼한 것이지, 자녀 스스로 생부나 생모가 싫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별한 경우보다 더욱 새아버지나 새어머니와 친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진다. 살아 있는 생부나 생모를 배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새로 부모가 된 사람에게 강하게 반발하고 미워하는 것이 생부나 생모를 사랑하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는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생부나 생모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는 위협을 느끼게 되어 더욱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에게 그들의 생부나 생모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자신은 단지 아버지나 어머니의 배우자 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마음을 실제로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부가 사별한 경우에는, 생부나 생모의 기일을 자녀들이 떳떳하게 기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또 생부나 생모의 사진이나 유품도 당당하게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별한 생부나 생모와의 친밀한 관계와 기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해 줄수록 쉽게, 그리고 빨리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담을 통해 자녀들의 이런 심리적인 갈등을 잘 이해한 부인은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전처의 기일에 방 한가운데 전처의 사진을 놓고 가족을 모두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사진 속의 전처에게 이야기했다.
"영희 엄마,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나는 당신의 자리를 차지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다만 소중한 영화와 철수를 아버지가 혼자 키우느라 수고하는 것이 애처로워 제가 함께 키우려고 결혼했어요. 영희 엄마만큼은 못하겠지만 애들을 잘 키워드릴게요. 영희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나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을 이어가는데 어느덧 딸과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부인과 자녀들 사이의 갈등으로 함께 마음고생을 하던 남편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이 가족은 새로운 관계에 잘 적응해가게 되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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